회사 생활 5년 차가 되며, 전공 살려 사기업에서도 일해보고, 루틴한 업무를 공기업에서도 해보았다. 진심으로 공부하고, 일하고 싶은 직업이 생겼다. 꼭 하고 싶다는 직감이 들었다. 감정평가사이다.
1. 공부하고 싶었던 분야
본격적인 감정평가사 관심의 시작은 이 블로그와도 연관이 있다. 지난 6월에 2주 넘게 자가 격리를 하며 회사에 가지 않았다. 그때 부동산 공부중 평시엔 쉽사리 건들기 힘든 부분을 접해보았다. 재개발 감정평가를 추정하는 방법, 현금청산자 재감정 관련 이슈, 땅의 용도 관리 지역, 조합 정관, 기타 부동산 관련 법 등등...
조금씩 접해보다가 문득 드는 생각이 있다. 나 아직 30살, 만 28살인데 그냥 내가 자격증 따서 전문적으로 하면 안 되나? "감정평가를 추정하는 간이적인 방법"말고 진짜 법인에 몸 담아서 "제대로" 해보면 안 되나?
내가 감평사를 붙지 못하거나 혹여 외부 변수로 중도 포기하더라도 공부했던 기록은 가치 있게 남을 것 같다. 일단은 무조건 시도해보고 싶었다.
교보문고 가서 감정평가 2차 과목들을 보았다. 실무 과목은 수리적인 연관이 참 많다. 예시 문제를 보는데 월세 수입을 활용하여 자산 가치를 활용하는 DCF 법이 나오더라. 재무관리와 주식에서 배우던 배당할인 모형과 연관이 있어 보이니 흥미로웠다. 아, 부동산도 이런 연관점을 배워두면 꽤 쓸모 있겠다...
법 관련한 것도 물론 머리 아파 보이지만, 모든 고시공부가 다 그러하고... 삶의 경험이 조금씩 축적될수록 여실히 느껴지는데 법은 정말 알아야 한다. 개인적으로 부동산 관련하여 관심 있어 찾아본 법들이 책에 있더라. 관련 내용을 쓰는 문제도 애초에 내가 부동산에 관심이 많았으니 썰 풀 것도 많아 보이고...
물론 취미로 깔짝깔짝 하는 것과 전업 수험생, 시험 보는 입장, 그리고 점수를 뽑아내기 위한 공부는 분명 다를 것이다. 그리고 어설프게 아는 현실과 이론이 맞물리다 보면, 괜히 지 자랑하고 싶은 본능에 답변과 연관성이 떨어지는 것을 열심히 쓰는 허튼짓에 빠질 수 있다. 2차 시험은 블로그 쓰는 게 아닌데 말이다. 그걸 정말 주의해야 할 일이다...
결론적으로 공부 자체가 하고 싶은 공부다. 원래 학창 시절부터 가장 자신 있고 잘하고 좋아하는 과목은 수학과 지리(한국지리, 세계지리)였다. 둘 다 연관이 되어 보인다. 그리고 요즘 과장 관심 있고 재미를 느끼는 부동산이란 분야를 관통한 주제다.
2. 예전부터 느꼈던 전문직의 필요성
2-1) 그럼 왜 꼭 전문직이 하고 싶으냐... 물론 사회적 지위 상승도 있고, 높은 급여 면도 이득이다. 그러나 가장 큰 이유는 주체적인 사회생활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원래는 안정적인 게 좋았다. 그래서 공기업을 왔지. 현재 직장은 온갖 개뻘짓을 한 선배들도 멀쩡히 회사를 다닌다. 쟤도 안 잘리니 나도 웬만하면 안 잘릴 것이다. 무척 안정적이다. 근데 그게 정말 안정적이고 안전한 것일까?
그래도 외부 변수에 자꾸 흔들린다. 근데 능력은 쌓이지 않는다. 오히려 삶은 소대가리가 되어 가는 게 더 맞지. 내 능력이 없으면... 그 변수를 통제할 능력을 잃어버린다. 그저 외부 변수가 나에게 유리하게 바뀌기를 기도하는 수밖에 없다. 혹시나... 안 좋게 바뀐다면... 어쩔 수 없다. 그냥 슬프다.
안정성과는 별개로 갑작스러운 인적 구성원 변경 등 나에게 불리하게 발생할 일들이 산재하다. 근데... 그걸 타파하는 법은 없다. 맘에 안 들면 에잇 때려치우고 만다,,!!라는 생각을 현재는 갖고 있다. 아직 나이가 어리기 때문이지. 근데 이 태도를 처자식이 생긴 후에도 과연 유지 가능할까? 그때부터는 조직이 어떤 부조리를 나에게 저질러도.. 나는 그저 순응하고 노동조합이나 상위 부서에 징징대는 방식으로밖에 해결을 못하게 된다. 그게 과연 옳을까...?
2-2) 이쯤 되면 아쉬운 점이 급 생긴다. 내가 가진 전공을 활용해서 사기업에 갔고, 관련 커리어를 쌓을 기회가 있었다. 그걸 유지해도 되지 않았을까? 그리고 약간 어려움은 보여도 그 분야로 다시 복귀하는 게 시험 붙는 것보다는 훨씬 쉬울 텐데?? 그렇지만, 전공 살려 커리어 쌓기보다는 감정평가사와 같은 전문직이 되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예를 들어 전 직장 시절을 일컬을 수 있다. 업황에 따라 회사 자체가 휘청인다. 솔직히 백날 나가 좋은 퍼포먼스를 나는 것보다, 중요 외부 변수가 그 회사에 유리하게 돌아가는 것이 성과급에 훠어얼씬 중요하다. 개인이나 부서 KPI가 있어도, 그 외부 변수가 훨씬 중요하다. 내 자신이 그 KPI를 통제하기가 어려운 부분이 많다. 사실 그게 좀 망해도 스트레스 덜 받으며 편히 갈 수 있는 장점도 품긴 하지만... 커리어를 주체적으로 쌓고 내 실력을 제대로 증명받는 면에서는 어려운 면이다.
전 직장 스테이 할걸...이라는 후회가 생길 수 있지만 그럴 필요가 없다. 나보다 일을 훨씬 잘하고 배우고 싶던 1~3년 앞 선배들이 있다. 그 사람들 지금 뭐하는가? 내 전공 선배이기도 했던 한 분은 본사에 기존에 배운 것, 하던 것과 전혀 상관없는 일을 하고 있다. 즉, 커리어 꼬인 것이다. 나머지는 아직 그 부서에 있다. 그렇다. 내가 다니던 회사는 그 자체로 꽤 좋긴 하나 업계에 대기업이 얼마 없다. 혹은 그 업계와 관련된 분야의 대기업들도 연봉이 그다지 좋지 않기로 유명하다. 그니깐 이직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26살에 취업했으니, 연차 20년 가까이 채울 무렵인 40 초중반에 잘리겠지. 5년 정도 협력사 뺑뺑이 돌면서 생명 연장할 수 있을 것이었고... 머 살짝 아쉬운 순간도 있지만, 이런 거 다시 생각해보면 일단 거길 그만두고 이곳으로 온 것은 좋은 선택이긴 하다.
다시 현재 직장에 대해 생각해본다. 내가 속한 사무 직군의 90%는 현장에 있다. 루틴 한 일로 가득하다. 머리가 굳어간다. 그러나, 본사를 가면 다른다. "큰 일"을 할 수 있다. 그 일도 재밌어 보인다. 회사에서 시켜주는 MBA 등등 뻗어나갈 방법도 있다. 그렇지만... 그 또한 앞서 언급한 외부 변수를 통제 못한다. 결국은 그 회사에 종속되기 때문. 그리고 내 마음대로 자리를 지키는 것에 한계가 있다. 내가 아무리 잘해도 부장과 궁합이 영 맞질 않던가, 혹은 "그 집단"의 백으로 내 자리를 치고 들어온다거나...
2-3) 전문직은 살아온 삶에 무게를 준다. 부모님이 보유한 재건축 조합의 조합장 및 임원진이 최근에 갈아 엎어졌다. 새로 임원을 뽑는다. 책자가 왔다. 투표하는 임원들의 경력과 자기소개서가 쓰여있다. 각자의 이야기가 있지만, 자연스레 학교와 경력에만 눈이 가게 되었다..;; 분명 취준생 시절에는 자소서에 스토리를 담느니 열정을 담느니 그랬다만, 본인이 그랬던 것은 금세 잊고 (귀찮기도 하고 다 비슷한 말인 것 같아서) 그냥 스펙만 본다.
우리 회사 출신이 대의원 후보에 계셨다. 회사 다니면서 mba도 따셨고, 이런저런 부서 등등 거쳐서 임원급까지 올라가셨네... 우리 회사 내에서 이 정도 커리어 쌓으셨으면 진짜 열심히 사셨고 능력 있는 분이시다.
그런데 다른 후보들을 세무사, 변호사가 있다. 무게가 달라 보이고 전문성이 달라 보인다;; 일단은 들고 있으면 전문 조합장이든 뭐든 자격이 주어진다. 즉, 인생의 확장성이 남달라 보인다. 물론 공기업 직장인도 좋지만... 회사를 나가면 그냥 아저씨로 끝나기 때문이다. 나만의 전문성을 한 단어로 증명받고, 평생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은 참 매력적이다.
3. 열정을 쏟아보고 싶은 일
전문직에 대한 로망이 있어도 공부하는 분야나 그들이 하는 일이 나랑은 맞지 않아 보였다. 법도 노관심이고 소송하고 등등 그런 것도 재미도 없어 보이고... 세법? 머 등등 다 너무 어렵다. CPA는 이미 나이에서 쫑남.
그러나 감정평가사라는 직업 자체가 정말 매력적으로 보인다. 어떠한 자산의 가치를 판정한다는 것이 멋지다. 그것이 투자의 묘미이고 재미이지 않은가? 그것이 직업이 된다. 꼭 부동산과 같은 투자 자산이 아니더라도 말이다.
감정평가사의 경우 거의 업무의 절반이 출장이라고 한다. 물론 지치는 면도 있겠지만 나에게는 정말 설레는 면이다. 난 거진 역마살이 낀 사람이기 때문이다. 여기저기 많이 다니는 것이 좋다. 원래 전 직장에서 자주 하던 출장도 좋아했던 편이다. 근데 출장이 아예 없다시피 한 현재 직장은 이런 면에서 답답해 죽겠다. 개인적으로도 여행을 좋아함은 물론이고, 새로운 동네에 가는 것 그 자체를 즐겼다. 별다른 관광지가 없어서 매력 없다는 평판이 있어도 도시 그 자체를 즐기기 위해 다닌 여행지도 다수 있었다. 부동산 매수를 위해, 또는 개인적 호기심으로 여기저기 다녔던 임장도 흥미를 위해 다닌 감도 꽤 있다.
물론 직업이 되면 얼마든지 환상이 깨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처음에 이런 동기 부여를 받는 것 자체, 그리고 어느 정도 사회생활을 해보면서 나와 맞을 수 있을 것이라는 감 또한 무시하지는 못할 것이다.
종합해보면 하고 싶던 공부이면서, 전문직이 될 수 있고, 평생을 흥미를 가지며 임할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이다.
+a. 시계를 위해 직업을 바꾸고 싶다?
내 기준에서 좋은 시계를 예물로 받았다.(블로그 프사가 야광 사진임) 공기업 조직 특성상, 업무 특성상, 그리고 어차피 고소득 직장이 아니라 그런가 눈에 띄면 구설수 오르기 딱 좋다. 어차피 브랜드 자체를 모를 사람은 많긴 하지만, 누군가를 통해 가격이 퍼지거나 하면 더더욱 그렇다. 그럴 리스크를 품고 차고 다니는 것 자체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시계란 온전한 자기만족의 영역인데 굳이...
그리고 시계가 너무 만족스럽고 예쁘지만, 가끔 현타가 온다. 결혼 준비 때문에 100만 원이 아까워서 허덕이면서 무슨... 그리고 월급 몇 번을 모아야 이걸 사는 거야? 싶다. 내가 현타가 오지 않을 만한, 그리고 시계를 그 조직에서 차고 다닐 때 충분히 어울리고, 예쁘고, 전문적으로 보일 수 있는 더 좋은 직업과 직장을 갖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본격 시계에 직업을 맞추겠다는 말 같지도 않은 논리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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